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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대천)이야기

낡음, 누군가에게는 그리움


보령시 주산면의 한 골목에는 오래된 간판이 유난히 많다.

가끔 지나칠 때마다 페인트 칠한 간판이 정겹게 느껴지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

고향의 옛골목이 생각나서 늘 포근한 기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50 동안 [주산약방] 운영하고 있는 임일재(87) 씨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골목에는 특히 낡은 간판이 많아요. 다들 비어있나 봐요?


써먹지도 않는 간판,  소용없는 것들. 영업 안하는 집들이여.

벌써  20 전에 다들 비웠지.

그만뒀으면 간판 떼고 가야하는데 그냥 가서 그렇지.

다들 나이 들어 죽고, 젊은 자식들은 다들 시내로 나가고 서울 가고 그랬지.




이렇게 오래된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저는 좋은데요.


뭐가 좋아? 외관상 보기 안좋아,  떼야 ~


 





여기서 약방 얼마나 하셨어요?


벌써  50 했지.

원래 고향이 여기 주산이오.

내가 제일 오래 됐지.


그전에는 장도 서고 그래서 사람들 왕래가 많았지.

요즘은 누가 여길 오나? 그냥 웅천 읍내나 대천시내로 가고 말지.

 옆에 고등학교가 있으니 학생들이 왔다갔다하지 다른 사람은 없어.

동네 사람이나 몇이 돌아다닐까.



그랬다.

 너머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오곤 했는데 이젠 다들 시내로 직접 나간다는 얘기다.

시내에는 모든   갖춰져있으니까.





하루에 손님  명이나 와요?


어떨 때는 두사람, 어떨 때는   오는데.

금년까지만 하고  닫을거유.

워낙 사람이 없으니까.

차만 수십  다니는데 사람은 없어.



괜히 물어본  아닌가 죄송스럽다.


장사가 너무 안돼서.

이웃 사람들이 급할 , 체했을  가스활명수나 달라고 하고

병원 갔다오면 박카스나 달라고 하는 정도지 뭐.

매년 면허세나 나가고 있으니  닫아야지.





언제 쉬세요?


쉬는  없슈.  1,000원이라도 벌어야지. 문닫으면 어떻게 .

그냥 방에서 자다가 누가 와서 깨우면  주고 그렇지.

뵈기 싫으니까 그냥  열어놓고 있는거지.

그래도 인제 힘들어서 닫아야 .


낼모레면 아흔인데, 옛날 같으면 고려장  나인데.

 


할아버지가 벌써 여든 일곱이유 옆에서 마냥 미소 짓고 있던 할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할머니도 동갑이라고 하시며 연신 할아버지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춰준다.






그래도 정정하신데요?


장사라도 하니까 이러고 염색도 하고 면도도 하는거지.

인제 장사 안하면 염색도 안하고, 면도도 않고 말어야지


두리번 거리다 구석에 있는  냉장고와 정수기를 보게 되었다.

 눈길을 보시더니,


, 이거 냉장고 하고 정수기.

그게 모르는 사람들은  ,   버나보다하는데 이게  손주들이  옮겨 가면서 버리기 뭐하니까 여기 두고 쓰는거유.






주산이 무슨 뜻이예요?


구슬 ,  산일 거유.

앞에 있는  주렴산인데 거기서  이름 같애.



얘기를 하는 내내 선생의 눈빛이 그윽해 지는  보면서 그리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알았다.

시끌벅적했을 옛모습을 떠올리면서 삶과 죽음,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 헌 것과 새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잠시나마 숙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성주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보령시내 모습


보령에서 만난 또 다른 옛 모습과 '시골스러운 풍경' 사진 몇 장을 더 보시라~




여전히 지게가 소중한 운송수단이다.



목욕탕 입구에 있는 공중전화. 한 달에 몇 명이나 이용할까 궁금하다.




1989년에 개정되었다는 버스시간표.

저걸 왜 떼지 않고 나뒀냐고 물어보니 돌아온 답.

"떼면 뒤에가 더 지저분해. 그냥 가려놓는 거지" 






웅천 5일장 모습.

동네 어른들에게는 '장날'이라는 특별한 설레임이 있다.

주막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먹기도 하고 조금씩 뜯어 온 나물을 파는 할머니도 보인다. 




조릿대를 다듬어 콩 지지대로 사용할 요량이다.


보령은 이렇게 도농복합 도시이다.

시내보다는 읍면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소도시의 모습 그대로다.

보령시 인구현황 


시끌벅적한 도시보다 이런 시골이 훨씬 좋다.

사람 사는 맛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천천이 간다"는 그런 느낌이 늘 마음을 차분히 어루만지고 느긋한 미소를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