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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대천)이야기

만세보령대상, 교육문화 부문 수상자 고석산 선생

 보령오석 석공예 최고의 장인, 고석산 씨(61세)가 지난 10월 1일 제 36회 만세보령대상 교육문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48호 보령석장인 그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1968년. 정종섭 선생 문하 석공예 입문
  • 1970년. 제 8회 전국 기능경기대회 은메달
  • 1980년. 제 9회 불교미술전람회 조각부문 특선
  • 1981년. 제 10회 불교미술전람회 조각부문 우수상
  • 1983년. 국가지정 문화재수리기능자 석공 667호
  • 1987년. 서울지방기능경기대회 명장부 석공예부문 2위
  • 1990년. 제 25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명장부 석공예부문 2위
  • 1992년. 문화재수리기능자 석조각 1303호
  • 1995년. 충청남도 미술대전 대상
  • 1997년.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선정
  • 1998년. 충남 지방기능경기대회 공예분과장 겸 석공예심사장
  • 2005년. 충남 지방기능경기대회 석공예 보령 유치위원장
  • 2013년. 충남 무형문화재 보령석장 제48호 지정



 

 가을하늘이 맑은 날 고석산 선생님을 찾아가 그의 삶, 예술 그리고 철학과 꿈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 작품 '심안' 작업중.


보령에만 있었으면 묘지에 들어가는 석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갔기때문에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선생이 어렸을 때부터 웅천지역은 보령오석의 산지로 석재산업이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인식한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서울로 가게되었고, 당대 최고의 석공기술자인 故 김형돈 선생의 수제자, 정종섭 선생으로부터 석공예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품에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하면 안된다. 보는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는 모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의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공모전에 출품하던 초년병 시절, 수없이 떨어지고 낙심하던 어느날 문득 '조각이란 이런거구나'라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기게 되었다.


* 대각사 쌍사자석
 
 선생은 2013년 충남무형문화재 보령석장에 지정되었는데 '석장(石匠)'은 돌을 이용하여 전통기법으로 석조물 등을 제작하는 장인을 말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기계를 사용해서 작업을 합니다. 
아래사진에 보이는 '불두'(부처의 얼굴)는 무형문화재 신청 때 제출했던 작품입니다. 저걸 모두 기계 없이 전통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작품의 눈을 바라보다보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는 충남대표 기능인을 발굴함과 동시에 보령의 석공들에게 기능경기대회를 알리고 석공예의 위상을 높이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30대 초반, 당시엔 나눠져있던 웅천과 대천의 예술인회를 통합하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1992년 9월 3개 협회(사진,미술,국악)로 한국예총대천보령지부가 인준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음악, 문인, 연예, 연극, 무용 등이 추가된 총 8개협회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노력이 그 기초가 된 것입니다.


 마침 옆 공장에서 작품을 만들던 임성순 작가가 찾아와 감수를 부탁하시네요. 



 

 임성순 작가처럼 당시 석공들은 대부분 '일'을 하는데만 열중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너무 아쉬웠던 고석산 선생은 전국에 탁월한 기능과 손재주가 있는 석공들을 모아 [한국석조각연구회]를 창립했습니다. 초대회장과 2대 회장을 역임하며 동료 후배들을 작품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전국기능대회에서 십 수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해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돌팍쟁이, 석수쟁이, 석공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석 조각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 미륵불



나는 진짜 좋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깎지도 쪼아내지도 다듬지도 않는 돌 그대로였다.

만드는데 길들여진 나.

어떻게 만들지 않는 훈련을 쌓아야 하나.




* 강원도 양양의 휴휴암 불상 제작 당시의 모습



 최고의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엷은 미소를 띠며 "최고의 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예술가의 명언을 남겼습니다.


 "작품을 도난당한 적이 몇번 있다. 그럴때 마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그리고 몰래 가져간 사람이 설마 그걸 버리겠는가?"


최고의 작품은 자신이 정직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선생은 돌조각 전수관을 짓고 여기에 석공예교육원을 설립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습니다. "보령을 전세계 조각가들로 북적거리는 국제도시로 만들고 싶다. 세계적인 돌조각의 메카 보령, 예술의 도시 보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려움이 없진 않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다.



보령시의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36회 만세보령대상'에 교육문화 부문의 고석산, 지역개발에 김영환, 체육진흥에 김행집, 사회봉사에 박장순씨가 수상자로 확정했다.


보령시는 지난 8월 20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만세보령대상위원회를 개최하고 4개부문 11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엄격하게 심사한 결과 이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교육문화 부문의 고석산 씨는 지난 1973년 전국기능경기대회 2위 입상을 시작으로 불교미술대전과 현대조각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한국석조각연구회 창립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으로 한국석조각예술인협회를 설립했고, 다양한 작품활동으로 보령의 석공예 우수성을 널리 알려왔으며,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48호 보령석장으로도 지정 받는 등 석공예 전수교육으로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보령시 문화공보실 제공-


*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의 인터뷰인지라 선생님께서 존칭을 사용하지 않은 점 이해바랍니다.